광풍처럼 몰아치던 인턴쉽이 한단락을 맺으려 하네요. 그동안 너무 바쁘고 바빠서 여기 찔끔 저기 찔금 댓글 남기는게 다였어요. 생각해보면 바쁘다는 건 대부분 물리적인 개념이 아니라 심리적인 개념이 아닌가 해요. 심리적인 여유가 없다는 뜻이려나요.
많이 배우고 만나고 고민했던 한달이었어요. 남자친구랑 떨어져 있어야 해서 더더욱 힘들었던 시기였어요. 태산같이 호령하던 묵직한 가죽 의자와 책상, 그리고 고고한 그림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비리비리한 싸구려 오피스 가구가 자리하고 있네요. 다들 런던으로 베를린으로 휴스턴으로 가버리지만 끈덕진 문명의 이기로 연결되어 있는지라 아쉽지는 않습니다. 지글지글한 보스의 얼굴을 안봐도 된다니, 시원할 따름이죠.
일단은 붙은 것 같네요, 인턴쉽.
한 한주 시달리고 나니까 얼굴이 퀭해졌어요 ㄱ- 그동안 알게된 것은 1. 신랄한 독설의 그분이 정리정돈과 컴퓨터엔 젬병이라는 점 2. 개인비서는 개인노예랑 90% 동의어라는 점 3. 내가 장장 4시간의 전화 회의(conference call이..한국어로 뭐였;) 도중 보스가 대여섯차례 걸쳐서 좁은 회의실에서 토사광란을 해도 꿋꿋하게 버틸 수 있는 비위의 소유자라는 점 (사실 광란까지는 아니고...그냥 휴지통에 뱉더군요. 우엑.) 4. 사무실 인테리어가 참 독특하다는 점 4번에 대해선 따로 포스팅을 할 예정입니다. 힌트를 드리자면...에드가 앨런 포 추리소설과 아편굴의 접점 쯤? 그나저나 하루 왕복 3시간 정도를 길바닥에 뿌리다 보니 힘들어서 죽겠어요, 잉잉. 이글루스 가든 - 하루를 돌아보는 일기쓰기 이때까지 한번도 압박 면접을 당한 적은 없거든요. 컨설팅 회사나 잘나가는 금융회사가 압박 면접을 하지, think tank 인턴 채용에 압박 면접이라니 금시초문;; 어제 잠 제대로 못 잔데다가 아침도 거의 굶고는 허덕거리며 기차타고 메트로타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뚫고 도착했는데...흑. 일단 위치에 좀 쫄았고 (그야말로 DC의 알짜배기 부동산...창문 너머로 백악관이 보여 ㄱ-), 오피스 규모에 쫄고, 거기다 창립자이신 회장님이 직접 면접을 하는 바람에 더 더 더 쫄고!!! 매섭게 몰아부치시는데...흐흑, 울고 싶었어요. 동서고금을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문학, 성경 요런게 섞인 형이상학적인 서두 질문에서 (회장님: 당신의 평생 목표는 무엇인가? 나: 지식을 얻는... 회장님: 지식과 지혜의 차이는 무엇인가? 나: 어버버버) 이미 진 게임임을 감지했죠, 후후. 그담엔 무자비하게 끌려갔다는. 매우 날카로운 분이셨어요. 이란이나 파키스탄 쪽 태생인것 같은데, 학력 및 경력이 화려하시더군요. 제가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에 실수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점, 완벽히 집어내시고. 제가 말실수를 좀 했거든요. 저는 The Hill이 그저 미국 정치계, 말하자면 워싱턴을 포괄적으로 말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게 아니랍니다. The Hill은 국회의사당을 가르키는 말로써 행정부나 사법부를 포함하지 않는다네요. 그걸 부득 부득 우기다가 (사실 이즈음엔 머리에 쥐나고 있는 상태) 한방 먹고 장렬하게 K.O.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느니라! 라고 하시더군요. 사실 너무 피곤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완전 아버지한테 야단맞는 기분? 우리 회사는 중요한 사람들과 빡빡한 데드라인을 두고 일한다, 엄청난 중압감을 견디며 일을 해내지 못하면 안된다고 강조하셨어요. 예, 확실히 알아모시겠슴다 ;ㅁ; 아, 정말 장난 아니었어요. 말꼬투리 엄청 잡히고...맨 마지막엔 시 하나 던져주고는 설명하라 하시네요. 읽을 시간 한 삼분 주시고; 뇌는 이미 마비 상태. 피곤하고, 무섭고, 힘들고... 한 두세번 읽어도 뭔소린지 전혀 모르겠고. 그러다 문득 팔을 보니 닭살이 징하게 돋아 있었어요. 빵빵한 에어컨 탓만은 절대 아니었죠. 지금은 자기합리화 (변명) 중이에요. 평범한 면접의 성공 비결은 '이야기' 거든요. 조금 자세하게, 사정 상황 설명해가며 자신의 장점과 경력을 이야기하는 것. 그런데 이분은 효율적으로 딱 요점만 집어서 말하기를 원하셨죠.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에서 - 배곯고 수면부족인데도 -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평상심을 유지하고 (얼굴만) 생글생글 웃으며 면접에 임한 저에게 박수를 보냅;;; 끝엔 마음을 비웠죠. 이렇게 버벅거렸는데, 될 리가 없어. 좋은 경험이구나. 집에 가서 이력서나 더 돌리자...하고 생각했는데, 난데없이 채용 결정? 은 아니고, 6월 1일까지 일 시켜 보고 결정하신다네요. 내일부터 나올 수 있겠나? 오늘 시작해도 되고. 이러시는 거 있죠... 아놔. 내일이 두려워져요. 하지만 믿져야 본전이겠죠? 못하면 잘리는 거고, 잘리면 스트레스 덜받는거고. 헤헤. 이글루스 가든 - 하루를 돌아보는 일기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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